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나라(고종, 군밤의 왕) (문단 편집) == 군사 == 원 역사대로 [[태평천국의 난]]을 거치면서 회군과 상군이 [[팔기군]]과 녹영군을 밀어내고 사실상 청의 정규군 지위를 차지했다. 공친왕의 난 이후 서태후를 압박하여 정권을 장악한 이홍장이 회군을 기반으로 하여 신건육군, 즉 [[북양군벌|북양군]](정식명칭은 정무군)을 육성하였고 이들이 청의 중앙군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광서제의 토지개혁에 반발하여 봉기한 차히르성의 몽골 왕공들을 제압하고 적잖은 군공을 세운 것으로 계기로 스스로의 힘에 취해 강남에 있는 조선의 자산을 압류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광서제를 자금성에 유폐하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하지만 일찍이 징병제를 실시한 조선군의 동원력을 우습게 본 결과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60만 대군'''과 맞닥뜨리게 되었고 시의적절한 광서제의 성단으로 결국 그 권세를 잃었다. 이후 서둘러 귀국한 이홍장이 저의 회군이 범한 잘못은 스스로 고치겠다며 직접 북양삼걸 등 문제 일으킨 자들을 산산히 쪼갠 다음 남양군과 마찬가지로 병력을 흩어, 각 성에 하나씩 신군으로 이루어진 진을 두고, 각 진은 스스로 병력을 초모하고 군자를 모아 운영하되 오직 그 군령만은 하나로 모았다. 그리고 정무군의 빈자리를 능력 있는 다른 성 젊은이들로 채워넣어 사사로운 연분으로 파벌 생기는 일을 막았다. 그리하여 정예한 군사가 경조와 각 성에 구비되고 중원의 방비가 함풍 연간의 국난, 즉 제2차 아편전쟁 때와 비하면 천양지차가 되었다. 이에 따라 당당히 아편 팔던 이화양행이 자성한다면서 상해 일대에 아편 중독자를 위한 의원을 세우고, 아편 판매는 최대한 신중히 하겠노라 선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